겨울을 맞이하며


제목에는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한 101가지 방법이라고 적었지만 사실 101가지 방법은 없다. 그냥 101이라는 숫자를 쓰면 죄다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써봤다. 사실 나는 겨울을 끔찍히도 싫어했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기도 해서일 수도 있고, 조금만 찬바람을 맞아도 아린 귀 탓일 수도 있다. 2019년 겨울에는 이런 글을 썼다.

뭔가를 싫다고 말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역시나 나는 겨울이 싫어. 추운 것도 싫고, 세상이 빨리 어두워지는 것도 싫어. 사람들이 몸을 웅크리고 어디론가 후다닥 가버리는 것도 싫고 한번 나가려면 옷을 몇 벌씩이나 껴입어야 되는 것도 싫어. 감기에 걸리는 것도 싫고 발이 차가워지는 것도 싫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을 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생애 처음으로 든 이유는 내가 여름을 좋아할 수 있는건 겨울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모든 계절이 서로를 지탱하고 이어준다. 그러니 모든 계절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게다가 제철 과일과 자연은 계절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노래

역설적이게도 추운 겨울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그중 빠질 수 없는 것이 노래다. 11월부터 듣기 시작하는 겨울 노래들은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아래의 겨울 노래를 들으면서 이번 글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요리

겨울엔 모두 집에 모여서 따뜻한 국물 요리를 끓여 먹는 모습이 연상된다. 샤브샤브나 칼국수나 전골 요리들은 겨울과 정말 잘 어울린다. 얼마 전 고민하다 버너를 구매했다. 지금까지 혼자 칼국수를 먹을 때 한 번, 친구들을 불러서 전골 요리를 먹을 때 한 번 사용했는데 만족도는 최상이다. 식지 않게 약한 불에서 계속 끓이면서 먹는 요리는 겨울에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다. 이번 겨울 내내 미나리랑 느타리버섯 청경채 등 야채를 잔뜩 사다 두고 퐁당퐁당 계속 빠트려 먹을 거다.

눈만 오면 눈으로 귀여운 걸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귀엽다. 또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기도 하다. 함박눈이 내리고 난 뒤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걸을 때의 기분은 겨울에만 느낄 수 있을 거다. 눈이 오면 눈싸움, 눈사람 만들기, 눈 위로 글자 쓰기와 같은 아무 목적은 없지만 웃음 나는 일들을 할 수 있다. 내 고향 대구에는 겨울에도 따뜻해서 눈이 내리는 일이 아주 드물다. 그러다 가끔 눈이 오면 수업이 끝나자마자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뛰쳐나가서 눈싸움을 하거나 눈썰매를 타느라 정신이 없었다.

따뜻한 라떼

카페인에 몹시 취약한 몸이지만 겨울에 마시는 따뜻한 라떼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스팀 밀크로 거품 없이(!) 예쁘게 라테아트가 그려진 라떼를 마시면 그것만큼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싶다. 좋아하는 책 한 권을 가져가도 좋고,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가도 좋다. 홀짝!

어묵 마차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붕어빵과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말 신기하기도 하지! 여름엔 어디에 계셨어요? 나는 특히나 어묵 마차에서 파는 어묵을 아주 아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평소에 어묵을 좋아하거나 사 먹지는 않는데 겨울철 마주친 어묵 마차는 지나치기가 어렵다. 꼬치 하나와 어묵 국물 컵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입김을 불면서 먹는 행복이 있다. 공기는 아주 차가운데 어묵을 먹으면서 따뜻해지는 속이 마치 노천탕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랄까.

차갑고 깨끗한 공기

따뜻한 곳에 있다가 밖에 나왔을 때 느낄 수 있는 깨끗하고 차가운 공기는 겨울에만 느낄 수 있다. 이건 고온다습한 여름의 그것과 아주 다른 느낌이다. 말하자면 씻지 못하다가 일주일 만에 샤워를 하고 느끼는 아주 깨끗하고 개운한 느낌이랄까? (내가 일주일 동안 안 씻은 적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또 반대로 추운 밖에 있다가 따뜻한 실내로 들어왔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안도감도 있다. '으추워!'를 외치며 이제는 따뜻한 곳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내려놓는 두꺼운 외투는 해방감마저 선사한다. 겨울 저녁 밖에서 한참을 다니다 우연히 마주한 따뜻한 불빛을 가진 작은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를 기억한다.

지하철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나는 겨울에 타는 지하철을 좋아한다. 추워진 만큼 두꺼워진 옷의 두께 때문에 지하철 자리에 앉으면 자연스레 내 옆의 사람과 옷이 닿게 된다. 누군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내리면 볼 일이 없는 타인이지만 잠깐이나마 어깨를 맞붙이고 있는 온기가 좋다. 좀 변태 같나? 어쨌든 나는 그때마다 어깨로 말하곤 한다. '잠깐이지만 온기를 나눠줘서 고맙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특히나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할머니들과의 어깨 공유. 괜히 경숙 씨가 생각나고 말 걸고 싶어지고 그렇다.

모두 집에

모두가 집에 복작 복작 모여있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따뜻하고 웃음이 난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귤을 까먹다 보면 시간은 어느샌가 훌쩍 지나있다. 날이 좋은 여름엔 주말에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게 왠지 모를 죄의식이 느껴지지만, 겨울엔 합법적(!)으로 집에서 뒹굴뒹굴할 수 있다. 가족들과 함께 살 때는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전기장판을 켜놓고 삼삼오오 모여있던 가족들이 '춥제 어여 들어온나' 하며 손과 발을 데워주고 귤을 까주던 게 기억난다. 그렇다. 난 아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 ~ 적다 보니 겨울은 너무 소중한 계절이고 이 세상에서 겨울이 없어지면 아주 큰 일 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렌델 왕국이 겨울을 지켜주길...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