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끝 2024 시작


노래에는 시간이 묻어있다. 12월인 지금엔 작년 12월 미국에서 들었던 노래들을 다시 지겹도록 듣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대만 여행하며 들었던 켄시 요네즈의 Kick Back 그리고 가족들과 헤어지고 호주로 떠날 때 멈추지 않던 눈물과 함께 들었던 기리보이의 Only One은 나를 그때로 다시 데려간다. 누가 보면 두 번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어디론가 영영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울었지만 1년 내에 한국을 세 번이나 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외에도 호주의 아름다운 날씨와 자연을 즐기며 자유로운 마음으로 들었던 노래들과, 여행 다니며 들었던 노래들이 순간순간들을 더 기억에 남게 해주었구나 싶다. 올해 나의 순간들을 함께해준 노래들과 함께 글을 시작해 봅니다.

2023년의 이벤트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데, 나는 올해 너무 많은 새로운것들을 시도했고 그 결과로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 일에는 모든 일들이 그렇듯, 좋은 일들과 나쁜 일들을 포함한다. 하지만 또 역시나 세상에는 무조건 좋은 일도 무조건 나쁜 일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사건 자체가 아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것도 배웠다. 그래서 어떤 일들이 2023년 저에게 일어났냐면요…

호주에서 살기 시작하다

작년 치열한 고민 끝에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은 나비 효과처럼 내 삶의 정말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는 근무하던 회사에서 원격 근무를 하는 조건으로 오게 되었고, 호주는 한국과 시차가 한두 시간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에 살러 간다는 건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했는데, 내가 그 곳을 마음에 들어 할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은 차치하고, 아는 사람도 살 곳도 없이 맨 몸으로 가서 모든 걸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살 곳을 정하고, 일을 구하고, 적응하는 기간에는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건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으려고 하는 것처럼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곳에서 지내고 있는 지금은 정말 행복하다. 오후 네 시만 되면 문을 닫아버리는 쇼핑몰과 카페들, 틈만 나면 누워버리고 바다로 산책을 나가는 사람들, 서로에게 양보할 줄 아는 여유가, 모르는 사람에게 웃어도 낯설지 않은 문화가, 겨울에도 10도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날씨가, 한국보다 저렴하고 맛있는 과일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바닷가 잔디밭에 누워서 친구들과 밤하늘에 빼곡히 박힌 별들을 보던 밤이 기억난다. 모든 부분이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예를 들면 바퀴벌레라던가 살인적인 집세라던가…), 또 이 곳에서 평생 살지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나는 몇 년간 이 곳에서 더 살기로 결심했고 앞으로 펼쳐질 하루하루들이 기대된다는 점이 가장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두 번의 퇴사

나는 올해 두 번의 퇴사를 했다. 아니 퇴사라는 사건이 내 의지와 관련 없이 일어났다. 원격 근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주에 온 지 한 달 뒤,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 있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의 사정이 있었지만 나로서는 길게 계획해서 온 만큼 바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게 첫 번째 퇴사였다. 예상치 못한 퇴사에 당황했지만 오히려 좋아의 마인드로(또 마침 호주는 여름시즌이었다!) 매일 같이 바다에 가고, 시드니 곳곳을 돌아다니며 호주의 여름을 온 몸으로 만끽했다. 어떻게 보면 덕분에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다시 일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준비를 하고 한 달 정도 뒤, 운이 좋게 시드니에 지사를 둔 미국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입사 후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만 5명인 큰 팀에 합류했고,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배울 점들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었고 실력만큼이나 성품도 좋았다. 이 곳에서 일하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즈음 미국 본사에서 시드니 오피스를 닫기로 했다는 결정을 들었다. 어째서 나에게 또 다시 이런 일이! 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사건을 통해서 나에게는 더 기대되고 새로운 기회들이 주어졌기 때문에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었던 경험에 감사할 뿐이다. 지난 2월 첫 번째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도 있었기 때문에 더 빠르게 회복하고 다음 챕터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어

프라하에서 1년간 살면서 영어를 쓰는 것에 두려움이 없기도 했고, 주변에 미국인 친구들이 꽤 있어서 큰 걱정 없이 호주에 왔고 다행히도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영어권에서 자랐냐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했지만 100%는 아니라는 생각이 지내면서 순간순간 들었다. 그룹으로 이야기할 때 순간순간 바뀌는 대화 주제를 따라잡는 것이나, 긴장해서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나,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야 할 때가 특히나 그랬다. 개발 자체는 영어로 하지만, 개발하기 위한 미팅은 모두 한국어로 했던 만큼 입사 후 개발과 관련된 의사소통을 영어로 하는데 꽤 스트레스를 받았고 친절하고 배려심 깊은 동료들의 도움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용어를 써야 하는지, 회사에서는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지금 나의 목표는 100%에 도달하는 것이다. 단순히 영어를 그들만큼 잘하고 싶다가 아닌, 언어라는 매력을 알게 되면서 그 언어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단순히 소통이 가능한 것을 넘어서서 새로운 언어가 열어주는 새로운 세상을 온전히 경험하고 싶다. 언어를 배울 때 가장 괴로운 단계가 기본적인 표현은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정신적인 수준을 언어 레벨이 따라오지 못할 때라고 생각한다. 나의 머릿속 세계는 수많은 의견과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다. 그 간극을 0으로 만드는 것이 결국에는 언어의 최종 목적지라고 현재로서는 생각한다.

일본어

언어 이야기가 나왔으니,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인 일본어에 대해서도 말해보려고 한다. 고등학생 때 열심히 봤던 원피스 시리즈부터 졸업 후 지금까지 6번도 넘게 간 일본 여행에 올해는 중학교 시절 이후 처음으로 덕질하고 싶은 가수가 생겼는데 “이마세”라는 일본인이다. 새로운 신곡이 나온 당일 기대되는 마음으로 노래를 들었는데 발매 직후라 일본어 가사도 한국어 가사도 제공이 되지 않았다. 노래는 너무 좋은데 가사의 의미를 모르니 절망적이었다. Whisper 라는 Open AI에서 만든 시스템을 사용해서 파이선으로 가사를 추출해서 듣기도 했다.

그의 덕질을 위해서도 있지만, 올해 10월에 다녀온 후쿠오카 여행을 통해서 나는 정말 일본을 좋아하는구나! 라는 걸 느꼈다. 살고 싶은 나라인가는 다른 문제이고, 일본의 모든 문화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나 하나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정신이 담겨있는 것들을 보면서 그랬다. 내 플레이리스트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한국 노래만큼 일본 노래도 자주 듣고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다.

올해 인상 깊게 본 유튜버 중 한 명이 Phoenix Hou 라는 사람인데, 여러 가지 언어를 습득하는 방법에 대해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언어를 모국어처럼 하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하던 내 생각을 바꾸어 줬고,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들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일본어를 시작했지만, 또 다른 언어들을 앞으로 계속해서 배워나가고 싶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도 그렇게 현실 세계의 언어도 그렇고 언어라는 건 참 매력적인 것 같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는 면에서 특히 더 그렇다.

소셜미디어 삭제

올해 7월 인스타그램을 삭제하고, 8월에는 개발 생태계를 알기 위해서 하고 있던 트위터도 삭제했다. 정확히 말하면 비공개나 단순히 앱을 삭제하는 것이 아닌 영구적인 탈퇴를 했다. 이유는 없다시피 할 정도로 단순한데, BTS 멤버인 정국의 인스타 계정이 없다는 기사를 읽고 “정국이 안 하는데 내가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로 바로 삭제해 버렸다. 포스트 하나당 1억을 받기를 하는지, 내가 올린 포스트가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하는지, 내가 소셜미디어를 보는데 쓰는 시간이 어떤 가치로 환산이 되기를 하는지를 생각해 보니 삭제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하는 사람이 잘났다, 하지 않는 사람이 잘났다 하는 이야기는 전혀 아닐뿐더러 다른 사람들은 하든 말든 사실 나와 큰 상관이 없다. 나는 나의 선택을 했을 뿐이니 말이다. 삭제 후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여전히 친구들의 소식은 개인적인 연락을 통해서 전해 들을 수 있고 개발 생태계 뉴스는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삶에서 덜어낼 수 있는 걸 하나 덜어냈다는 해방감과 쾌적함은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

1월 가족들과 함께 떠난 대만 여행, 그리고 호주에서 정착할 곳을 찾으며 갔던 브리즈번과 시드니, 중간에 떠난 두 번의 한국, 그리고 한국을 간 김에 갔던 후쿠오카 여행,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온 멜버른 여행까지 (지금 이 글은 멜버른 숙소에서 적고 있다!) 총 7번의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장소에 갔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작년 회고 글에는 이런 말을 적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내 이야기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내 마음속의 이야기를 해줘야지. 내년에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내가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곳에 가서 살게 되는데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즐기고자 한다.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지는 일은 두려우면서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다. 부디 2023년에는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곳들을 찾아내고 싶은 바람이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내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고 그 장소들은 모두 내가 사랑하는 곳들이 되었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만큼 정말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영원히는 아닐지라도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만나게 되는 모든 인연과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대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2024년에는…

정착하고 싶은 곳을 찾았고, 몇 년간은 이곳에서 지내게 될 예정이니 이제 잘 정착해 보고 싶다. 1년간 한 건 정착이 아니고 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나름대로 적응 기간과 정착 기간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52주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이제서야 내가 이곳에서 정착할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을 틀어두고 청소하고 요리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만큼, 또 내년에는 집에서 일을 하게 될 일이 많아질 만큼 혼자서 지낼 수 있는 공간을 구하려고 한다. 또 몇 년간 나의 바람이었던 차를 사는 일도 드디어 내년에는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호주와 시드니 곳곳을 누빌 생각에 매우 설렐 따름이다.

새로운 일의 방식에 대한 도전도 내년에는 시도해 보려고 한다. 이 시도는 나에게 정말 많은 선택지를 안겨줄 수 있지만 그중 하나는 내가 다시 성경을 공부하면서 하느님께 쓸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게 가장 값진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시공간과 경제적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것도 그중 하나이고 말이다. 그만큼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다. 이미 충분히 많이 다니고 있지 않아? 싶기는 하지만 새로운 경험에 나는 항상 목이 마른 것이다. 가고 싶은 곳으로는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베트남으로 가족 여행을 가보고 싶고, 뉴질랜드와 태즈메이니아 (또는 퍼스), 발리나 치앙마이, 그리고 친구들과 가보고 싶은 곳을 가기 위해서 미국도 다시 가고 싶다. 얼마나 많이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만으로도 든든해지는 기분이 든다.

자주 웃고 매 순간을 즐기고 싶다.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 숨기는 것 없이 내면이 보이지만 그게 모나지 않은 둥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사랑이 가득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줄 수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과 공부해야 할 것들을 배워나가고 싶고, 때때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삶에 무너지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참, 그리고 2년간 유지하던 짧게 자른 머리를 기를 거다!